티스토리 툴바


<로열패밀리> 자본이 계급을 재편한 시대, 인간다움의 길을 묻다

Fact or True_#Think 2011/12/27 16:46


특수화된 환경과 전문 집단보다는 인물과 캐릭터, 그리고 누구에게나 닥칠 법한 사건에 철저히 포커스를 맞추는 한국 드라마에서 재벌은 가장 흔히 쓰이는 소재이자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지는 소재다. 젊은 청춘 남녀의 로맨스를 그리는 트렌디 드라마의 갈등 소재부터, 인간 욕망의 극단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들의 최종 목표점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지는 한국의 재벌 드라마(혹은 드라마 속 재벌)는 등장인물들에게 갈등을 부여하는 가장 손쉬운 소재이자 현실의 대한민국이 처한 자본의 계급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처럼 재벌 계급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십수년전부터 재벌은 한국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쓰였음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 드라마가 그려 내는 재벌의 모습에는 조금씩 변화가 있어왔다.


그리고 2011년, 한국 드라마의 재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공고한 왕국의 모습을 하고 TV에 등장했다.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제 재벌은 자본으로 재편된 카스트 제도에서 꼭짓점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로서 그 모습을 확고하게 드러낸다. 결코 뒤집어지지 않을 구조를 단단하게 뿌리내리며 새로운 계급 질서를 구성하는 재벌의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난 수 많은 드라마들이 있지만, 이 중 가장 재벌 세계의 본질을 가깝게 조명하고자 했던 드라마로는 <로열패밀리>가 있다. <로열패밀리>는 JK그룹과 정가원, 그리고 그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김인숙이라는 여자를 통해 재벌가와 그 속의 영원한 타자인 한 여자의 욕망과 나아가 이미 왕국이 되어버린 재벌가의 현실을 투영하고, 종래에는 인간다움과 구원까지 논한다.


JK와 정가원 세계를 대표하는 욕망 vs. 정가원에 절대로 편입될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욕망


이 드라마에서는 크게 두 명의 등장인물들의 욕망이 충돌한다. JK와 정가원 자체로 대변되는 공순호 회장의 욕망과 정가원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절대로 구성원으로는 편입될 수 없는 김인숙의 욕망이 그것이다.


JK와 정가원의 세계 구성원들에게 욕망이란 자신들의 세계를 어떻게 더 확장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자신들이 이제껏 세대를 지나며 구축해 온 부와 그를 통해 사들인 명예는 정통성을 가진 귀족이 사라진 시대에 스스로를 ‘로열패밀리’라 칭하며 살아오게 해 줬고, 앞으로 그들의 목표는 어떻게 그들이 구축해 온 왕국을 지키고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왕조 시대의 왕가와 동일한 고민이다. 그런 이들에게 그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 그들이 갖고 있는 부를 대물림 할 수 있는 핏줄(왕조 시대의 왕족)이거나 혹은 그들이 구축해 온 부를 철저하게 목숨 걸고 지켜줄 수 있느냐 아니냐(왕조 시대의 영주)로 좌우된다. 그들에게 인간다움이란 ‘JK를 지킬 수 있는 자’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며, 그들이 갖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 때 그들은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가진다. 그 상황에서 JK를 지켜온 공순호 회장은 오로지 JK와 정가원이 ‘로열패밀리’라는 이름을 갖고 지속될 수 있도록 지키는 데에 모든 사력을 다한다. 


반면 김인숙은 고아로 태어났고, 일찍 잔인한 사회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인숙은 적어도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하고 살기를 바랐다. 성실하게 살고자 했고, 타인에게 먼저 피해를 주는 일은 없고자 했다. 그녀 세계에서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녀가 바란 인간다움의 조건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약자에 불과한 김인숙에게 삶은 그녀가 최소한 인간다운 가치조차 영위할 수 없도록 잔혹한 현실로 내몰았다. 그렇게 평생을 내몰리듯 살던 그녀에게 기회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JK 그룹에 속한 남편을 만난 일이었다. 평생 ‘정가원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가문에 염증을 느꼈던 둘째 아들은 김인숙과 함께 유일하게 정가원에 편입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다만 그는 정가원의 핏줄이었기에 존재의 의미를 가졌지만, 그 마저도 아닌 김인숙은 철저히 정가원 안에서 외면받는 타자였다. 김인숙은 내내 자신을 숨죽이며 살아왔음에도 벼랑 끝으로 내몰려야 했던 인생 그대로, 정가원에서의 그녀 또한 자신의 이름 또한 찾지 못하고 ‘K'라는 익명화된 타자의 모습을 강요받으며 편입되지 못한 채 부유한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남편마저 잃고 난 후, 김인숙은 정가원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랜시간 웅크려 왔던 자신 안의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계속 세계의 주변부로 밀려나기만 했던 김인숙에게는 이 기회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지킬 마지막 기회이자, 잃을 것도 도망칠 수도 없는 마지막 벼랑 끝에서의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정가원에서 김인숙은 기꺼이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다.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재벌은 주인공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때로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더라도 그 세계에 편입되려는 자들의 최종 목표였고 혹은 좌절점이었다. 하지만 <로열패밀리>에서 공순호와 김인숙이 부딪히는 지점은 JK와 정가원인 동시에 ‘인간다움’이다. 건설된 왕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되길 택한 공순호와, 그 괴물이 되어버린 이를 상대하기 위해 또 다시 괴물로 성장한 김인숙의 전쟁은 단순히 재벌가 그 자체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생존과 인간다움에 대한 존재 증명의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때때로 이들은 자신이 가진 괴물성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한다. 공순호는 지속되는 싸움에 결코 질 수 없지만 동시에 회의감을 느끼고, 김인숙은 모든 것을 내걸고 시작한 이 싸움의 승리에서 얻어가는 것들에 대해 고민한다. 살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지만 지키기 위해서는 전력 질주밖에 답이 없는 정가원에서 두 사람의 욕망이 부딪히는 지점들은 기존에 한국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에너지를 구축해 냈다.


각자의 세계에서 갖고 있는 인간다움에 대한 치열한 존재 증명과 욕망의 격돌은 <로열패밀리>가 갖고 있는 드라마로서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만한 미시적 고민을 가장 치열한 방법으로 부딪히게 함으로써 드라마 자체의 ‘존재 증명’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JK와 정가원은 그 누구도 접근 할 수 없는 밀실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축소판


이처럼 <로열패밀리>는 이전에 본 적 없던 가장 강렬한 두 여주인공의 충돌을 통해 각자가 갖고 있는 세계관과 욕망이 부딪히는 흥미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낸 것 외에도 이 사회가 갖고 있는 재벌에 대해 가장 근본적으로 고민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처럼 재벌의 세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끔 이야기 한 드라마는 없었다. 대체적으로 그들의 화려함은 표면적으로 그려졌을 뿐, 결코 한 ‘세계’로써 구축된 바는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JK와 정가원은 드라마 안에서 그 자체로 고유명사이며 그 사회 속에서의 인간다움이나 능력은 일반적인 세계의 능력이나 인간다움과는 다른 개념으로 해석된다. 김인숙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정가원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는 받아들여지지만 결코 JK와 정가원의 정서적 일원이 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에게는 아예 제 3세계라는 공간조차 허용되지 않으며, 정가원에서 외면당하는 즉시 그 어떤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김인숙이라는 이름이 아닌 ‘K’라는 수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이니셜의 익명성으로만 보아도, 김인숙이 정가원에서 얼마나 ‘인간으로’ 대우 받지 못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드라마가 보여주는 정가원과 그 속의 김인숙의 모습은 그만큼 현대 사회의 재벌이라는 집단이 얼마나 공고한 것인지와, 우리 주변에 더 이상의 ‘성공 신화’는 존재할 수 없다는 계급적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하여 보여준다. 교육 수준이 높은 한지훈은 물론 애정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계약(결혼) 관계였던 김인숙 조차도 결코 그들 속에 섞일 수 없었다.


드라마 <로열패밀리>는 결코 혈연이 아니고서는 받아들여 질 수 없는 구성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령 물리적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한들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장기적으로는 살아남을 수도 없는 현실 세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혈연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왕국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한들 그들의 주요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계급 간이 이동이 점점 드물어지고, 그 경계를 뛰어넘는 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다다른 우리 사회의 현실을 <로열패밀리>는 K 혹은 김인숙의 존재를 통해 고스란히 투영한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것은 <로열패밀리>가 모든 것을 내걸고 자신의 이름을 찾았던 김인숙이 결국은 이 드라마의 마지막에서 정가원을 훌쩍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이든 그저 실종일 뿐이었든 정가원과 JK에서 가장 이질적인 인물이었던 김인숙과 한지훈은 그렇게 사라져 버리며 끝이 난다. 이 전쟁의 승자가 누구이던 간에 JK와 정가원은 공순호가 택한 인물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김인숙이 결국 전쟁에 승리했다 한 들, 결국 정가원과 JK에서 살아남아 후일을 살아가는 것은 공순호와 그녀가 택한 JK의 적통 조현진이다.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정가원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최후에 JK를 가진 것은 조현진인 이상 이 드라마 속의 정가원은 결국 현실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타자화 된 자들은 결국 승리하더라도 이 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떠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게임이 아니라 삶이라면, 살아남는 자가 결국 승자이고 <로열패밀리>가 보여주는 세계는 결국 타자는 게임에서 이겨도 삶에서 밀려나 영원히 타자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삶의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내내 보여주었던 정가원과 JK의 세계는 얼핏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고한 밀실임과 동시에 사회의 축소판이다. 타자들을 영원히 내 치면서 자신의 세계를 지켜야 하고, 다른 세계에 진입해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하며 설령 다 걸어서 이기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삶에서 영원히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 이미 공고하게 구축된 체계 속에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란 ‘원래의 세계를 지켜서 살아남는 것’이 최선인 현실과 다름 아닌 것이다.


생존에의 욕망과 뛰어넘을 수 없는 계급의 현실, 그 속에서 구원을 말하다


<로열패밀리>는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재벌이라는 존재를 JK와 정가원이라는 이름으로 투영시켰고,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인물들에게 당위성을 줬다. 그건 정가원의 공순호도 살아남을수록 괴물이 되어가며 괴로워할 수 밖에 없었던 김인숙도 마찬가지다. 두 인물 모두 악역이거나 악역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은 두 인물 모두에게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명분과 그 명분을 지키기 위한 악마성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정가원의 인물들이 비록 상식적인 사회에서 말하는 ‘인간다움’이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 존재했던 것이고, 그 계급을 지키기 위한 ‘로열패밀리’의 노력을 단순히 비난할 수 없는 것은 단순히 재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자신이 속한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고 싶은 본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래서 나름대로의 세계에서 살려는 당위 속에서 사람이 찾아야 할 구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김인숙은 이름마저 버려야 했던 인생에서 아들의 죽음을 방조한 상태로 스스로 구원을 포기하고 악마가 되기를 자처했다. 구원받기 위해 전력을 다해 JK를 가지려던 김인숙의 당위는 아들 조니의 죽음을 방임하면서 무너질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는 부모를 죽게 만들었지만 그 죄책감으로 한지훈을 후원하면서 주류 세계에 편입되지 못하고 도태될 뻔 했던 한지훈의 인생을 구원했다. 그리고 조니는 김인숙에게 버림 받았지만, 김인숙으로부터 무언의 인정을 받으면서 스스로 구원 받았다. 김인숙은 조니와 한지훈의 부모님을 죽음으로 몰아 넣으면서 죄책감을 갖고 스스로의 악마성을 저주하지만, 동시에 조니의 엄마로서 한지훈의 후원자로서 (다른 의미로) 두 사람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JK를 갖고, JK에서 K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 것은 결국 김인숙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구원이었다. 그리고 최후에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갖길 마다치 않았던 JK를 떠나면서(자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김인숙에게 구원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묻는다.


공순호 역시 자신의 방식대로 구원에 대해 질문한다. 김인숙과의 전투에서 결국 패배했지만,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JK와 정가원을 지키기 위한 자신의 삶이 옳았는지 되짚어보고,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남편과 아들에게 사랑받는 평범한 가정의 어미이고 싶었던 스스로의 마음을 되돌아보며 당위와 구원을 설명한다. 그리고 종래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악마가 되길 마다치 않았던 스스로의 삶의 최종 목표인 JK를 다시 되찾아 믿음직스러운 후계자인 조현진에게 물려주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공순호 역시 자신의 구원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거대한 재벌 그룹을 놓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과 이 세계를 전복하려는 이 세계 밖의 한 여자, 그리고 이 세계를 지키려는 인물들 간의 전쟁으로 시작해서 밀실 같은 사회의 투영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각 세계에 속한 사람들 나름의 구원으로 마무리를 맺는다.


<로열패밀리>에서 계급은 넘을 수 없는 선이다. 그리고 그 계급 위에 선 이들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적자 생존의 현실에서 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과 그 욕망의 당위와 종래에는 구원을 말하고, 살면서 저지른 악마적인 행동들에 대한 용서를 묻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 모든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가능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드라마의 원작인 <인간의 증명>과 달리 굳이 <로열패밀리>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목표가 아님을 반증한다.


현실은 이미 자본으로 재편된 카스트를 들고 이 계급이 영원히 뒤집어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다져가고 있다. 그리고 각기 다른 계급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정치적 단위가 어떻게 되었든, 이들은 경제적 단위로 세계를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저마다 그 세계에서 그들만의 ‘인간다움’을 찾기를 원한다. 정가원에서의 ‘인간다움’이 JK와 정가원이 쌓아온 부와 명예를 지킬 능력과 그들과 연관된 핏줄이었다면, 김인숙과 한지훈이 원했던 ‘인간다움’은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다른 세계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이 시대의 구원의 아이러니를 <로열패밀리>는 반영했다.


너와 내가 사는 세계가 같으면서도 다른 이 시대. 인간다움의 길에 대해 정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다른 세계를 보고 있으며 그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증명‘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느냐. <로열패밀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을 그 치열한 고민들에 대한 또 하나의 질문이었다.-제14회 시민의 비평상 가작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